비일본산 해외 노벨 게임 소개&평가 18 <크리스탈라인(Crystalline)> 비일본산 해외 비주얼 노벨 소개


1. 게임 정보

   - 제목 : 크리스탈라인(Crystalline)

   - 발매일 : 2018.08.22. (스팀 출시 기준)

   - 제작사 : PixelFade Studio(https://www.pixelfade.com/crystalline/)
   
   - 배급사 : 상동

   - 장르 : 미연시

   - 대상 연령 : 전연령

   - 보이스 여부 : 풀 보이스(주인공 제외)

   - 유/무료 : 유료(스팀 기준 정가 2,1000원)

   - 언어 : 영어
  
   - 기타 : 스팀 상점(https://store.steampowered.com/app/616250/)

 이 글에서 사용되는 이미지 중 따로 출처를 표기하지 않은 이미지의 저작권은 상기 제작사에 있습니다

2. 간단 요약 및 선정 이유

이 작품은 판타지 계열 이세계물로 '어쩌다가 이계로 소환된 주인공이 본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여정'을 그린 비주얼 노벨이다. 다만 판타지라고 해서 고블린을 때려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마왕까지 저지하는 그런 전투 중심의 판타지물이라기보다는, 그냥 세계를 여행한다는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게 특징인 작품이다. 동일한 제작자의 전작인 <Ace Academy>도 메카 + 학원물을 내세웠으면서도 메카는 덤 수준이고 그냥 연애 묘사에 초점을 맞추었는데, 이 작품 <Crystalline> 또한 판타지물을 표방하고 있지만 판타지 설정은 그냥 배경과 동기를 제공하는 정도이고 연애 + 코미디에 중심을 두고 있다.

사실 이 회사의 전작인 <Ace Academy>는 그렇게 필자가 높게 평가한 작품은 아니다. 설정만 보면 무거운 내용으로 흘러갈 것 같고 메카가 중심 소재가 될 것 같았지만 내용은 그냥 평범한 학원 연애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주인공 제외 풀 보이스 지원 를 내세웠던 것 자체가 아직까지 영미권 비주얼 노벨에서 드물었기에 제작사 자체에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스팀에서도 고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라서 전작이 그렇게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다시 한 번 잡아보게 되었고, 전작보다는 나아진 점이 있다고 생각하여 소개하게 되었다.

3. 캐릭터적 측면에서의 평가

이 작품의 주연은 주인공과 한 명의 히로인, 그리고 동료 세 명(남 1, 여 2)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며, 각 주연은 판타지에서 흔히 나오는 클래스(용사, 보물 사냥꾼, 마법사 등)을 가지고 있다. 즉 판타지 장르에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파티 구성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특기할 건 성직자 포지션이 없는 대신 주인공과 히로인이 맡은 파티에서 맡은 역할(마법전사)가 겹친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주인공은 그냥 전사였다가 여행 중 이세계의 힘을 받아 들이면서 마법에도 눈을 뜨는 거고 히로인은 시작부터 마법전사라는 차이가 있긴 한데 어차피 하는 역할은 비슷하다. 이 작품이 전투 장면이 중심이 아니라서 별 문제가 되는 건 아닌데 좀 특이하긴 했다. 

클래스를 제외한 설정(배경, 성격 등) 또한 무난한 편이다. 이를테면 '어린 나이부터 비상한 머리를 가져서 동년배에서는 따라올 자가 없는 마법사', '현실적이면서도 적당한 선에서 본인의 신체적 매력도 이용할 줄 아는 미녀 트레저 헌터',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무뚝뚝한 용병' 등 판타지 장르를 즐긴 사람이라면 익숙할 인물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종합하자면 클리셰를 그대로 따와서 주연들을 구성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자체가 나쁘다고 보진 않는다. 이야기가 아니라 달달한 연애를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면 오히려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 상이 좋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 작품의 히로인은 한 명이라는 것, 해당 히로인의 성격이 마음에 안 들면 그대로 아웃이라는 것이다. 즉 취향을 심하게 타게 된다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나온 영미권 비주얼 노벨 중에서도 성공작에 들어가는 걸 볼 때 영미권에서는 통하는 히로인상인 걸로 보인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 이어질 개별 인물 소개에서 하도록 하겠다.

<전작도 그렇고 이 제작자의 작품에 등장하는 남주들은 대체로 훈남형인 것 같다>

먼저 주인공 소개이다.  일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이세계로 가게 된다는 뻔한 설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배경이 생략되어 있기에 독자로 하여금 자신을 투영하기 쉽도록 되어 있다. 다만, 이런 부류의 이름 없는 주인공이라도 보통은 제작사에서 정해준 기본 이름이 있긴 한데 이 캐릭터의 경우는 기본 이름이 실제 설정 상 이름이 아니라는 게 명백하다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다('코나미군' 같은 이름이다). 성격은 선택지에 따라 평범할 수도, 중2병스러운 대사를 늘어놓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쁜 성격은 아니며, 그냥 고전 RPG의 주인공스럽다고 보면 된다. 물론 연애가 중심이 되는 비주얼 노벨이라는 특성 상 그런지 서비스 신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약간 경박해지긴 하지만 말이다. 다만 전투가 중심이 아니라는 건 그다지 주인공이 활약하는 장면이 없다는 이야기이기에 고전 RPG의 용사 같은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는 건 주의해야 할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훈련 장면의 묘사 등을 보면 분명 강해지는 것 같긴 한데, 정작 전투 패턴은 변하지 않는 지라 그다지 용사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런 부분만 제외하며 고전 RPG에 나올 법한 주인공을 무난히 구현한 거라고 보면 될 것이다.

<특이하게 뒤집어진 모습의 CG가 먼저 나오고 똑바로 선 모습은 한참 뒤에야 나온다>

그 다음으로 소개할 캐릭터는 팡고(Pango), 마력을 먹고 사는 슬라임 같은 생명체로 차원 이동으로 인한 잔류 마력에 이끌려 주인공과 만나게 된다. 히로인보다도 먼저 만나게 되는 캐릭터이자 주역 일행에서는 일종의 마스코트 역할을 한다. 그런 만큼 여성진들에게는 귀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주인공 또한 선택지에 따라 이 캐릭터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지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처음으로 이세계에서 조우한 존재인 만큼 내심 정을 주고 있는 것 같다(설사 겉으로 매몰차게 대하는 선택지를 골랐다고 해도 말이다). 또한 단순한 마스코트적 역할 외에도 기본적으로 평범한 인간이 인지하지 못하거나 가지지 않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주인공에게 공감의 대상이 되거나 주인공을 위로하기도 하는 등 이해자로서의 역할 또한 갖고 있다. 즉, 일종의 동물 동료나 패밀리어에 해당하는 캐릭터라고 보면 된다.

<예의 바르고 착하며 긍지 높은 기사이면서도 소녀 감성이 충만하다는 갭 모애를 노린 듯한 히로인이다>

3번째는 본작의 히로인, 리애나 던(Leanne Dawn)이다.  히로인인 만큼 주인공이 이세계로 진입한 후 가장 먼저 조우하는 인간이며, 이상하게 마나의 밀도가 높은 지역(주인공이 전이된 영향이다)으로 조사 차 왔는데 거기서 주인공과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스토리 상의 역할은 주역 팀의 리더로, 초반부에는 주인공을 마법사 길드에 인도하기 위해, 후에는 주인공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기 위해 팀을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 또한 공식적인 직함이 현실의 국립 수사관에 해당하는 마법사 길드의 마법 기사(Mage-Knight)인지라, 스토리 상에서 마법이 관련된 장면과 전투와 관련된 장면 양쪽 모두에서 활약하며, 작품 속 악역 집단과 직접적으로 대립하게 되는 당위성을 제공하기도 한다. 성격 면에서 보자면 정의롭고 명예를 중요시하면서도 소녀 감성(귀여운 것에 사족을 못 쓴다거나, 무서운 이야기에 약하다거나, 수위가 있는 이야기에 부끄러움을 잘 탄다거나 등) 또한 간직하고 있어 일종의 갭 모애를 가진 성격이라 볼 수 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최근 서양 RPG의 히로인이나 여주가 대체적으로 당찬 성격이라 이 작품 또한 히로인이 한 명이기에 이 캐릭터에 그런 성격으로 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 외로 소녀 감성 충만한 캐릭터라서 살짝 놀라었다. '영미권에서 이런 캐릭터도 인기가 있구나'하고 말이다.

<판타지 장르에서 총을 쓰는 캐릭터는 옛날에는 거의 없었는데 최근에는 흔한 것 같다>

그 다음은 잭 스페이드(Jack Spade), 주인공을 제외하면 유일한 남성진(위의 팡고를 제외한다면)으로 용병이다. 에밀리아 처럼 말수가 적지만 이 쪽은 무뚝뚝한 것에 가까우며, 용병인 만큼 정정당당함과 절차를 중시하는 레이나와는 충돌을 빚을 때도 있는 편이다. 그 외의 인물에게도 그다지 살가운 면을 드러내지는 않는 편, 하지만 은근히 츤데레적인 면모가 있기에 아래 소개할 카라에게 자주 놀림받으며 이 때문에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나중에 연인 관계가 되게 된다. 그렇다 해서 츤데레가 낫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다혈질적인 면모도 가지고 있어 일행들이 갬블로 시간을 보낼 때 돈을 잃어가면서도 끝까지 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보다도 개성적이고 매력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캐릭터라고 할 수 있으며, 보통 이런 장르에서 주인공을 제외한 남성 주역은 (특히 한 명일 경우) 경박하거나 잉여인 경우가 많은데 그 점에서 벗어난 건 확실히 높게 살 만한 부분이라 본다.

<쿨데레를 좋아하는 필자이기에 자연스럽게 본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되었다>

다섯 번째는 에밀리아 에스텔(Amelia Estelle), 위의 리애나가 마법 전사라면 이쪽은 학자 계통의 마법사다. 어린 나이에도 괄목할 만한 마법 성과를 보이는 수재라고 하지만 여전히 주변에 아이 취급을 받는 게 불만으로, 주인공 일행에 합류할 때도 마법 대학의 교수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몰래 참여하게 된다. 스토리 상에서는 말수가 적긴 하지만(필요한 말만 한다고 보면 된다) 전문적인 마법 지식이 필요할 때는 확실히 활약한다. 다만 주연 파티에서도 여전히 아이 취급인 건 어쩔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개별 이벤트마저 평소에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그녀가 아이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갭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아이 포지션이라 수위가 높은 이벤트는 일절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도 필자 개인적으로는 말수가 없는 캐릭터(쿨데레라고 하기에는 공략 캐릭터는 아니니까 제외한다) 여성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이다.

<도적 캐릭터는 후반부에는 잉여라는 대다수 판타지의 전통은 이 작품에도 적용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인물은 카라 노이르(Kara Noir)이며, 복장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트레저 헌터다. 주인공 일행과는 현실적인 필요(주인공 일행에는 함정 등을 담당할 인물이 없고 그녀 혼자는 마법을 어찌 하지 못하기에)로 동행하게 되는데, 여타 판타지 장르의 로그 계열 캐릭터처럼 등장 초기를 제외하면 본업에 대한 묘사가 빈약해진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 대신 부각되는 게 파티에서 어른의 누님이라는 포지션인데, 주로 쑥맥만 모여 있는 남성진이나 연애 관련으로는 순진한 레이나에게 장난을 치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동시에 때때로 서비스신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후반부에는 남성 츤데레인 잭과 커플이 되는데, 달달하기만 한 주인공 커플보다는 적당히 밀당이 오고 가는 이쪽 커플 쪽 묘사가 재미있을 정도다. 다만 그런 만큼 공략 대상이 아닌 게 좀 아쉬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종합하면 이 작품의 인물 구성은 클리셰를 거의 그대로 따와 만들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렇기에 인물 측면에서는 동일 제작사의 전작인 <Ace Academy>에서 그다지 발전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뭐 전작이 나름 성공했으니까 굳이 이 부분에서 발전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필자 입장에선 최근 서양 RPG에 터프하면서도 개성있는 이미지의 캐릭터들이 등장했기에 영미권 비주얼 노벨에서 그런 이미지의 캐릭터들이 나와야 성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했는데, 그게 틀렸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는 게 의미가 있었다. 어쨌든 결론을 내리자면 무난한 캐릭터 구성이었기에 캐릭터성 측면에서는 중급이라고 본다.

2. 스토리적 측면에서의 평

위의 타이틀 이미지를 보면 주역 일행 외에도 5명의 여성이 있다. 저 5명의 여성은 이세계 '테라'의 5대 원소의 고대 정령(쉽게 생각하면 정령왕 비슷한 거라 생각하면 된다)이며, 그들의 인정을 받고 힘을 양도 받아야만 주인공이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즉 전체적인 스토리의 흐름은 위의 고대 정령들이 사는 신전을 차례대로 찾아가면서 시험을 치르고 힘을 모으는 식으로 진행되는데, 여기서 다른 이세계물과는 차이를 보이는 게 악역과의 관련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상적인 이세계물이라면 '마왕을 저지해야 돌아갈 수 있으며, 그 때문에 힘을 모아야 한다' 식인데 반에 이 작품은 '소환된 이유는 모르겠고 그냥 힘을 모아야 돌아갈 수 있다' 이기에 악역과 충돌할 여지가 상당히 약해진다. 

<5명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으로 만나는 어둠의 정령, 이 캐릭터만 선택지에 따라 아예 안 볼 수도 있다>

이렇게 악역과의 관련성을 약하게 만들었기에 얻는 장점이라면 그만큼 여행 자체와 그 속에서 차츰 발전해가는 주인공과 히로인의 연애에 초점을 둘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작중 악역을 맡고 있는 '보이드(VOID)'와 때때로 충돌하긴 하지만 후반부까지는 의도된 조우가 아니라 우연히 들른 도시에서 음모를 저지하는 식이기에, 특별히 기억이 남는 적 캐릭터는 존재하지 않고, 매번 졸개와 만나서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대신 대다수의 이벤트 CG는 '귀신 들린 숲을 지날 때 히로인이 주인공의 팔을 무심코 움켜쥐고 당황해 얼굴이 빨개지는 장면'이라든가, '내기에서 진 벌칙으로 비키니 아머를 입고 부끄러워하는 히로인', 등 히로인의 연애 관련 묘사, 그게 아니더라도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노력하지만 순간적으로 기쁜 나머지 애 같은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 같은 기타 주연들의 행동 및 심정 묘사에 초점을 맞출 수 있고 있다.  꼭 CG가 있는 장면을 빼고 보더라도 여정 중에 들른 마을의 축제를 즐기거나, 함께 쇼핑하는 모습 등의 묘사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선택지 또한 직접적으로 루트와 관련있다기 보다는 주변 인물들과의 만담을 위한 선택지가 훨씬 더 많고 말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판타지 세계에서의 여행과 일상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 과정에 일어나는 해프닝과 만담을 통해 소소한 웃음이나 흐뭇함을 불어 일으키는 식으로 독자들에게 어필한다고 보면 된다.

<반대로 특정 이벤트는 내기에서 져야(미니 게임을 실패해야) 볼 수 있기도 하다>

특히나 달달한 연애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상당히 취향에 맞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인공과 히로인 모두 연애에서는 쑥맥인 편이기도 하고, 히로인의 소녀 감성 또한 충만하니까 말이다. 여기에 판타지적인 배경까지 더해져서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자면 축제의 한가운데 별이 같은 밤하늘이 보이는 발코니에서 주인공을 말없이 바라보고 미소짓는 장면이나, 공중 정원에서 석양을 배경으로 사랑을 맹세하는 장면 등이 있겠다.  물론 공략 대상이 한 명 뿐이니까 그 전에 히로인이 취향에 맞아야겠지만, 일단 취향에 맞다면 흐뭇한 미소를 띠고 주인공 커플을 바라볼 수 있다. 여기에 간혹 등장하는 서비스신(등에 오일을 바른다거나 같은)은 덤이다.

<히로인이 한 명인 만큼 다양한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다는 건 (취향에 맞다는 전제 하에) 장점이다>

반면 단점 또한 명확한데, 판타지 물에 흔히 볼 수 있는 박력 있는 전투를 기대하거나 주인공 무쌍을 기대했다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비주얼 노벨인 만큼 RPG 장르에 비해 전투 씬이 빈약하게 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비중 있는 악역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작 중 긴장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위에서 보이드라는 조직을 언급했지만 카리스마 있는 간부가 등장하기 보다는 매번 자코 급들만 상대하기 때문에 이 조직이 정말 작중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위험한 게 맞는 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사천왕 같은 고위 급 간부는커녕 로켓단 같은 매번 나오지만 주역 일행에게 깨지는 식의 말단 간부조차 등장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작중에 등장하는 최종 보스라고 등장하는 녀석도 그냥 생각 없이 덩치만 큰 소환수에 가깝기에 이런 녀석에게 비장하게 원기옥을 날리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이런 걸 소환해서 세계를 정복하겠다는 보이드나, 고작 이 정도 스케일에 고전하고 자신의 모든 힘을 소진하여 필살기를 쓰는 주인공이나 똑같이 좀 모자라 보인다. 이럴 거면 아예 악역 자체를 등장시키지 말고 끝까지 미지의 세계를 여행한다는 컨셉을 유지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명색이 최종 보스인데도 묘사를 보면 그냥 이계의 괴수를 불러들이는 것에 가까워 영 별로다>

그 외에도 킥스타터로 펀딩한 작품이라서 그런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쓸데없는 설정이 작품의 분위기를 해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적으로 중간에 악역 조직 보이드를 설명하면서 고대의 영웅들을 소개하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까진 좋지만 나중에 그 중 한 명과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그러면 보통 '이건 떡밥인가?'이라 생각하는 게 당연한데, 황당하게도 향후 출연이 일절 없다. 아마 킥스타터 보상 중에서 고액 후원자의 카메오 출현 특전으로 등장한 게 아닌가 싶은데, 물론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보지만 결과적으로 분위기를 해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과거의 5영웅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맥거핀에 가깝다. 모금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완성도 면에선 마이너스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화려한 전투 장면이라든가 스케일이 큰 영웅담을 원하는 사람보다는 판타지 세계 속에서의 여행 그 자체, 혹은 만담과 같은 가벼운 코미디적 요소를 원하는 사람에게 맞는 스토리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메카는 양념이고 주는 학원 연애&일상이었던 동 제작자의 전작 <Ace Academy>를 특징을 그대로 계승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작이 그랬던 것처럼 시리어스 요소를 어중간하게 집어넣는다는 단점 또한 그대로 같고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본작은 단일 히로인을 내세웠기에 전작처럼 개별 파트와 시리어스 요소가 따로 노는 문제점은 없기에 나름 발전했다고 볼 수 있으며, 방향성에 호불호가 있는 거지 방향성 자체가 마음에 든다면 표현 방식은 괜찮았다고 본다. 결론을 내리자면 중급~중상급 사이의 수준의 스토리였다고 생각한다.

3. 게임성 측면에서의 평가

이 파트에서는 먼저 작품 내적 요소(보이스, Live2D, 미니 게임) 등에 대해서 먼저 서술한 뒤, 그 후에 작품 외적 요소(ADV 화면, 옵션, CG 갤러리 등)에 대해서 평가해보도록 하겠다. 

가장 먼저 살펴볼 요소는 당연히 이 작품이 풀 보이스를 지원한다는 점이다. 우선 영미권 성우의 풀 보이스 지원이라는 점 자체가 필자에겐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요소다. 물론 영미권 비주얼 노벨 대다수는 아예 성우가 없거나 아니면 일본어 성우를 쓰니까, 영미권 성우를 쓴다는 자체가 차별 요소가 될 수 밖에 없지만 말이다. 이제까지 필자가 접한 영미권 작품 중에 제대로 된 성우를 기용한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제까지 소개한 작품 중에서 보자면 이 제작자의 전작인 <Ace Academy>나 Yangyang Mobile의 <The letter> 정도 밖에 없고, 소개하지 않는 작품까지 합쳐도 열 손가락이 될까 말까 하다. 성우진 자체도 메인 히로인 역을 맡은 아만다 리를 비롯하여 경력 있는 전문 성우들을 사용했기에 완성도도 높은 편이다. 특히 이 작품은 독창적인 플롯으로 승부한다기 보다는 대화를 통한 소소한 개그 등의 익숙하면서도 편안한 감정 묘사에 중점을 두는 작품이라, 성우들의 열연을 통해 작중 인물들의 감정이 목소리에 잘 실려서 드러나는 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그 다음으로 살펴볼 건 최근 비주얼 노벨 업계에서 대세가 되고 있는 Live2D 지원인데, 솔직히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Live2D라 하지만 필자 입장에선 어차피 움직이는 게 중요했다면 그냥 애니메이션 쪽을 보고 말지 하고 생각하는 입장이라서 별 차이는 못 느꼈다. 그래도 대다수의 영미권 비주얼 노벨이 아직까지 Live2D와는 거리가 먼 걸 생각하면 분명히 차별화되는 요소이긴 하다. 어쨌든 플러스가 되면 되었지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이다(물론 형편없이 구현해서 오히려 불쾌한 골짜기 현상을 불러 일으킬 정도가 된다면 문제겠지만 말이다). 다만 이왕 지원할 거면 이벤트 CG에서도 지원하는 게 어땠을까 싶긴 하다. 이 게임에서 주연들의 의상이 자주 바뀌는 편이 아니라 중반만 되어도 스탠딩 CG의 미묘한 움직임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가기 때문에 말이다.

<기본적으로는 시간 제한 안에 맞추어 버튼을 입력하는 방식이며 상황에 따라 변형이 가해진다>

미니 게임 면에서는 전작보다 조금은 발전했다고 할 수 있겠다. 전작 같은 경우에는 시간 제한 하에서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어떤 선택지가 정답인지는 순전히 감으로 찍어야 하기에 기껏 시간 제한을 통과하더라도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적어도 이번 작품에서는 선택지를 제대로 고르기만 한다면 실패하는 일은 없으며, 단순히 시간 제한 만 있는 게 아니라 암기력 테스트라든가 혹은 화면의 무작위 위치에 나타나는 아이콘을 클릭해야 하는 등 바리에이션도 생겼다. 물론 그래봤자 하품 나올 정도로 쉬운 난이도라는 건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발전은 발전이니 칭찬해주긴 해야겠다.

여기까지 작품 내적인 요소에 대한 평가였는데, 발전하였다곤 했지만 여전히 의미 없는 미니게임을 제외한다면 나름 게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요소들이다. 특히나 이 제작사의 작품들은 전작도 그렇고 특별한 스토리보다는 가벼운 일상이나 러브코미디 같은 요소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감정의 깊이를 직접 느낄 수 있는 풀 보이스 지원은 확실한 플러스 요소이다. 개인적으로는 스토리까지 좀 신선한 내용으로 도전했으면 좋겠지만, 이렇게 자신의 강점 분야에 특화하는 것도 나쁜 선택이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아래에서 작품 외적 요소에 대한 평가를 마친 후에 종합하도록 하겠다.

<Live2D가 적용되었기에 실제로는 조금씩 인물의 SCG가 움직이고 있다>

ADV 화면, 전작과 크게 달라진 바는 없는 것 같다. 다만 필자가 중간에 모니터를 바꾸어서 그런진 몰라도 왠지 글씨가 작은 것 같은 게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캐릭터의 SCG가 커진 건 분명히 개선된 점이라고 본다. 전작의 경우는 배경에 비해서 지나치게 SCG가 작아서 종종 허전했으니 말이다.

<참고로 아래의 타이틀 화면은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계속 움직이고 있다>

옵션 화면, 전작에서도 캐릭터 별 보이스 설정이 없었는데 이번에도 빠져 있다. 그리고 저렇게 반투명 식으로 옵션 화면이 나오기에 배경에 가려서 제대로 안 보일 때도 있다는 것도 마이너스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그 외에는 특기할 점은 없다고 본다.

<아직까지 보컬이 풀 버전이 공개되지 않아서 아쉽다. 뭐 공개되어도 게임 내에는 안 실리겠지만>

음악 감상 같은 경우 글씨조차 작아서 곡명을 알기 힘들 정도였던 전작에 비해선 상당히 깔끔해진 편이나, 여전히 부족한 건 사실이다. 전 곡 재생 같은 기본적인 기능이 빠져 있으니 말이다. 전체 곡 수는 29개인데 전작이 보컬곡의 반주 버전을 포함해서 34개였던 걸 감안하면 비슷한 수준으로 보인다. 어쨌든 평균을 살짝 밑도는 수준이라 보면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런 식으로 이벤트 CG 뿐만 아니라 배경 CG가 따로 구분된 형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미지 갤러리, 이벤트 CG 갤러리와 배경 CG 갤러리로 구분되어 있다. 이벤트 CG는 33장, 배경 CG는 58장으로 가격대에 비해서 많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주 부족하진 않은 것 같다. 다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의상 바리에이션이 적은 게 흠, 히로인을 제외하면 에필로그 정도는 되야 다른 의상을 볼 수 있다(중간에 나오는 수영복 이벤트를 제외한다면). 그래도 퀄리티 자체는 전작보다 나아진 것 같다. 전작 같은 경우는 이벤트 CG에서 인물을 제외한 배경이 좀 단순했던 경향이 있었는데, 본작에선 꽤 개선된 편이다.

종합하자면 작품 내적인 요소는 일단 영미권 성우들의 풀 보이스 지원이라는 점에서 필자 기준 상위권을 먹고 들어가는 반면 작품 외적 요소들은 자잘하게 아쉬운 점이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상에 근접한 중상, 혹은 상하(?) 정도의 게임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 측면에서 조금만 더 생각해봤으면 망설임 없이 상위권이라는 평가를 내렸을 것인데 안타깝다.

4. 종합

결론적으로 스토리와 캐릭터 면을 감안했을 때는 평작 정도지만 영미권 성우의 풀 보이스 지원이라는 점을 감안해서 중상위권에 드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전작인 <Ace Academy>가 개인적으로 평작 수준이라 생각하기에 전작에 비해서는 진보한 건 분명하다. 다만 필자 개인적으로는 스토리 중심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라, 여기에 좀 더 독특한 스토리가 더해지면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역시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서양 RPG에서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이 당찬 성격이 많았기에 서양에선 그런 히로인이 취향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소녀 같은 히로인도 인기가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건 나름 신선했다. 또한 판타지 장르임에도 무쌍이나 영웅담 같은 걸로 승부를 걸지 않고 철저하게 모험에 초점을 맞춘 것도 참신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다만 이 부분은 제작자의 전작에서 제시한 방향성을 보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판타지스런 분위기는 좋지만 주인공이 본격적인 먼치킨이 되는 건 싫다는 사람, 또는 이세계를 여행한다는자체가 좋다는 사람, 그리고 소녀 감성의 히로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을 괜찮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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